NEW P. P. (New Post Pande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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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1,050회 작성일 20-04-29 17:06본문
※같이 읽으면 좋은 기사 https://blog.naver.com/swf1004/221883325865
New Post Pandemic를 이야기하다.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오렌지족, 낑깡족, 딩크족, 욜로족 등의 다변화한 종족을 양성해 냈다.
뿐만 아니라, X세대, Y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 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세대가 열리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매일을 살고 있다.
두 말 하면 입 아프겠지만, 요 몇 달 간은 더욱 그랬다.
눈 뜨면, 어제와는 또다른 오늘을, 마치 처음 겪지 않는 사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살아내곤 하는 내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새로움을 넘어, 새로움이 새롭지 않은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다!
마스크가 뭐길래
인적이 드문 뒷골목 약국에도 어김없이 '마스크 품절'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동네 커뮤니티마다, 마스크를 구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넘쳐나고
사연이 안타까워지면 질 수록 마스크 가격은 프리미엄이 붙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마스크 사기가 성행하고,
대체통용화폐로 마스크가 유통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지갑 가득 마스크가 가득한 마스크 만수르, 이 시대에 가장 부러운 사람.
사회적거리두기?
말에는 힘이 있다.
내가 내 뱉은 말은, 살아 움직이며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정부는 지속적인 '사회적거리두기'모 모자라, '강력한 사회적거리두기'를 제안했다.
우리는 모두 사회 안에 존재하는, 사회적 존재들이기에 사회적인 거리를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사회적거리두기'는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거리를 두는 것도 슬픈 노릇인데, 굳이 '사회적'인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까.
몸은 멀되, 마음은 더욱 더 가까이 사회적인 거리좁히기를 실천하자고 주장하고 싶다.
말이 가진 힘을 믿기에, 서로를 더욱 보듬을 수 있게, 서로에게 바짝 다가가 보자.
재난문자 수난시대
삐이삐익.
출근길 지하철에서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들리는 재난문자는
이제 더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누구 하나 움찔, 조차 하지 않는다.
'흠, 우리 옆동네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군.'
이젠 동선도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그가 지난 길을 내가 지났을 거고, 설령 그렇지 않대도
그 길을 지난 누군가가 지금 내 옆에 있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누군가의 재난이, 나의 재난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만원 지하철에 매달려 하루를 시작하고, 접는다.
집밥을 부탁해
쌀소비가 줄고 있다는 통계는 해마다 나오는 뉴스였다.
밥 말고도 먹을 게 흔한 시대니, 집이라는 공간에서 실상
주방의 역할은 많이 축소되었다.
식탁에 모여앉아 집밥을 먹는 풍경은, 귀하디 귀한 풍경이지 않았나.
전세계를 일순간 패닉에 빠뜨린 괘씸한 이 전염병이 가진, 그나마 순작용이 아닐까.
너무 앞만 보며 바삐 살아온 우리에게,
나만 잘났다고 뻐기던 교만한 인간에게,
‘그저 우주의 작은 티끌’이라는 사실을 또 한번 일깨워주는
딱 마치맞은 찰나가 아닐까 한다.
아래 [빌 게이츠의 아름다운 성찰]을 읽으며 고개를 또 주억거려본다.
“코로나19는 정녕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저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선이든 악이든 어떤 영적인 뜻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코로나19에 대해 명상을 하는 중에 코로나19가 정녕 우리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것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코로나19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나 종교, 직업, 재정 상태 혹은 얼마나 유명한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어쩌면 우리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대합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면 확진자인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에게 물어보십시오.
코로나19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여권이 필요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세워 놓은 가짜 국경선이 별 의미가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단기간 억압함으로써 온 생애를 억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코로나19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영양분이 부족한 인공식을 먹고 화학 물질에 오염된 음료를 마시면서 건강을 무시해 왔습니다.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병에 걸리게 마련이지요.
코로나19는 인생이 짧다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로 도우며 특히 노인이나 병자들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화장지 구입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위주로 변했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식료품과 물, 약과 같은 본질적인 것이지 때로 필요도 없이 가치를 부여하는 사치품들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코로나19는 가족과 가정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무시해 왔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서 ‘우리집’으로 다시 만들고 가족의 유대를 튼튼하게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코로나19는 진짜 우리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업일 뿐입니다. 진짜 우리 일은 우리가 창조된 뜻대로 서로 보살피고 서로를 보호하고 서로에게 보탬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자아상을 계속 점검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단 하나의 바이러스가 이 세상을 멈춰 서게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자유 의지가 우리 손에 달려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나누고 주고 지원하고 지지할 수도 있고, 이기적이고 사재기하며 나만 돌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할 때에 그 본색이 드러납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인내할 수도 있고 공황장애에 빠질 수도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역사상 여러 차례 발생했으며 이것도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리적 공황에 빠져서 세상 종말이라고 생각하고 결과적으로 선보다 악을 더 키워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 시간이 종말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성찰과 이해를 통하여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울 때까지 계속되는 반복되는 회로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 지구가 병들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화장지가 수퍼마켓 선반에서 재빨리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삼림 황폐화도 그와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우리 집이 아프기 때문에 우리가 병이 든 것입니다.
코로나19는 모든 난관이 지나간 뒤에는 평온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인생은 주기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번 일도 거대한 주기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황에 빠질 일이 아닙니다. 이것도 지나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거대한 재앙으로 보지만, 저는 위대한 교정자로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중요한 교훈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것이 주어졌고, 그것들을 배울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